이라크의 눈물은 태안의 눈물이다.

- 파병연장동의안 통과를 지탄하며



이라크와 태안에서는 석유로 인한 전쟁이 한창입니다. 이라크에서는 종전 선언이 있었지만, 여전히 불안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 전쟁은 5년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태안의 기름 방제는 사실상 끝나간다고 선전되지만, 이제부터 적어도 20년 동안 계속해서 석유의 영향력이 지속될 것입니다.

  전쟁을 그만둬라.


5년간 지속된 전쟁은 수많은 생명 - 즉, 이라크 민중과 미군 그리고 수많은 동식물 - 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여기에는 어떤 명분과 변명도 통할 수 없습니다. 미국이 더 많은 석유를 통제하기 위해 일으킨 전쟁은 제아무리 테러와의 전쟁, 이라크의 민주주의와 안정이라는 말로 치장된다 해도 합리화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미국의 전쟁에 명분을 더해주는 한국의 파병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국익이라는 것이 없다는 것 또한 밝혀졌지만, 그것이 있다고 하여도 전쟁에 동참한다는 것은 평화에 공헌한다는 한국의 헌법에도 위배됩니다.


  석유를 멀리하자.


모두가 알다시피 이라크 전쟁은 석유로 인해 일어난 전쟁이었습니다. 수많은 강대국들이 석유 및 여러 에너지 자원의 확보에 주력하고 있고, 한국 또한 다를 바 없는 상황입니다. ‘버마’에 진출한 한국가스공사와 대우인터내셔녈은 군부의 비호와 결탁 속에서 천연가스를 채굴 중입니다. 석유와 화석연료를 계속해서 사용하는 일은 기후변화뿐만 아니라 제국주의적 전쟁과 약탈과 관계되는 일입니다.

또한 그 검은 눈물이 유출되는 사고는 많은 생명들 - 해안의 생물과 어민들 - 의 삶의 터전을 빼앗아 갔습니다. 기름 유출 사고는 석유를 쓰는 대가로 일어나는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지구에서 한해 1000여건의 사고가 일어나며, 10년간 100만톤, 즉 태안 기름 유출량의 100배가 바다로 흘러듭니다.


  반전평화와 생태주의를 함께 외치자.


화석연료는 자본주의의 필요와 제국주의적 에너지 영토 확장의 논리 속에서 전쟁을 만들어내었고, 채굴과 운송, 사용의 과정에서 생태적 파괴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12월 28일, 이라크파병연장동의안을 통과시킨 한국 국회를 지탄하며, 이후에도 반전평화와 한국 사회의 생태적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함께 만들어 나갑시다.



서울대 환경동아리 씨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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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25 17:19 2008/02/25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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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자본주의




화석에너지가 문제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화석에너지가 현대 사회의 심각한 환경문제를 발생시키는 주범이라고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화석에너지의 사용이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농도를 높이고 이것이 온실효과를 발생시켜 수 억년을 걸쳐 안정되게 유지되어 왔던 지구의 기후시스템을 교란시킨 결과 기후변화가 발행하고 있다는 과학적 사실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 결과다. 일단 이러한 과학적 사실을 인식한 후에 우리는 화석에너지의 사용을 줄이는 것과 동시에 이를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해야 한다는 분명한 공동의 목표를 가지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도 우리는 기후변화로 인해 느끼는 위기의식 아래 전세계 곳곳에서 기후변화협약을 비롯한 가지각색의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의문은 좀 더 근본적인 곳에서 시작된다. 화석에너지가 지금 인류가 마주한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란 말인가? 화석에너지가 문제라면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 사용을 줄이는 간단한 목표를 단순히 실행하기만 하면 될 것 같지만 실제로 현실이 돌아가는 모양을 보면 이것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쉽게 알아챌 수 있다. 때문에 우리가 위에서 던진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최근 유엔산하의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에서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실질적으로 우리가 줄여야 하는 온실가스의 총량을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이들이 주장하는 감축양의 아주 작은 부분만을 만족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기후변화협약조차 실행에 어려움은 겪고 있는 현실은 지금의 에너지시스템과 자본주의 사이의 끈끈한 연결고리를 확인하지 않고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문제라 할 수 있다.



화석자본주의


화석에너지와 자본주의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자본주의가 그 태초에서부터 가지고 있었던 모순을 해결하고자 끊임없이 요구했던 것에 대한 실제적인 응답이며 결과이다. 우리가 화석자본주의에 대해 이해하고자 한다면 우선은 생존을 위해 필요한 물건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체제인 자본주의의 역사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자본주의의 태동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석탄을 증기기관에 사용하여 자본주의의 잠재력을 폭발시킨 18세기 말의 산업혁명으로 보고자 한다.


공장제 시스템


18세기 영국의 상황으로 돌아가보자. 세계 곳곳에서 확보한 광활한 식민지와 방직산업의 번창으로 영국은 세계의 부를 독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규모의 가내수공업으로는 그 성장의 한계가 명확했다. 사실 그 당시의 경제성장률은 지금과 비교했을 때 별 볼일 없었으며 생산성은 한없이 낮기만 했다.[1] 이 때 등장한 것이 증기기관이다. 사실 최초의 증기기관은 1712년 뉴커먼에 의해 고안되었지만 처음에 만들어진 증기기관은 많은 기술적 문제를 가지고 있었기에 실제 사용은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좀 더 강력한 동력을 요구하는 산업적 수요에 부응해 18세기 말 와트가 석탄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개량된 증기기관을 선보였고 이는 성장에 한계를 보이고 있던 당시의 생산체제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덕분에 기존에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던 목재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방대한 에너지를 가진 화석연료를 사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공장에서는 석탄이라는 강력한 에너지원을 사용한 대규모의 자본집약적 기계 덕분에 눈부신 생산성 향상이 이루어 졌다. 그 당시 공장이라는 생산공간은 일반적인 형태가 아니었다. 대부분의 물건은 집안에서 직접 만들어 지거나 혹은 공방의 장인들의 엄격한 통제아래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화석에너지와 증기기관을 바탕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해지자 기존의 것은 공장 생산체제로 서서히 대체되기 시작했다. 가족구성원에 의해 가정에서 혹은 장인에 의해 공방에서 이루어 지던 소규모 생산으로는 더 이상 공장제 시스템의 생산성을 이겨낼 수 없었다.


19
세기 석탄의 뒤를 이어 20세기 석유와 전기가 중요한 동력원으로 사용되면서 생산성 향상 경향은 가속화되기 시작한다. 우선 석유부터 살펴보자. 사실 석유 사용의 역사는 로마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에는 화염투척장치나 윤활유로 극히 적은 양이 사용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19세기 중반부터 미국에서 최초로 상업적 석유시추가 가능해지면서 대규모로 값싼 석유가 생산되기 시작한다. 석유가 성공적으로 생산되고 사용될 수 있었던 데는 거대한 석유기업들의 역할이 컸다. 당시에 등장한 대표적인 기업이 록펠러의 스탠더드오일사이다. 스탠더드사는 갖은 방법과 수단을 사용해 타 석유회사를 인수하거나 연합전선을 형성했다. 석유는 독점화 되었고 그 결과 그들은 미국에서 막대한 이익을 창출할 수 있었다. 이 시기에 다른 지역에서도 로열더치사나 BP와 같은 지금의 석유 메이저 회사들이 세워졌다.


초기 석유는 멸종위기에 처한 고래의 기름을 대신해 윤활유나 조명용으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전기등의 등장으로 윤활유나 조명에 사용되던 등유의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한다. 이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스탠더드사의 주도아래 석유가 1870년대 오토에 의해 발명된 내연기관의 연료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후 대부분의 기계는 석유에서 나오는 가솔린과 디젤로부터 동력을 얻는 형태로 고안되었다. 이러한 강력한 수요를 바탕으로 석유기업들은 석유 시추부터 전세계 소비자에게로의 분배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석유시스템을 구축하게 된다. 석유를 사용하는 모든 종류의 기계를 생산하는 기업들 또한 이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렇게 거대 석유기업들 사이 혹은 석유산업과 다른 산업과의 연합을 통해 석유는 자본주의 사회에 견고한 뿌리를 내리는데 성공한다.


전기 역시 화석에너지와 따로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는 에너지원이다. 미국의 경우는 약 50퍼센트, 한국에서는 약 40퍼센트의 전기가 석탄으로부터 생산될 정도로 현재 대부분의 전기는 화석연료로부터 생산되고 있다. 하지만 전기가 상업적으로 사용되기 까지는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했다. 최초의 전기발전기는 1834년에 만들어졌지만 상업적 이용이 정착되기까지는 몇 십 년의 시간이 소비됐다.


대부분에게 전구의 발명가로만 알려진 에디슨은 전구의 발명보다는 전기시스템을 사회에 정착시키는데 큰 도움을 준 인물로 평가하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다. 에디슨은 발명가이기 이전에 사업가로 전력의 생산과 배분 그리고 사용에 있어서까지 전기시스템 전반을 설계한 인물이다. 에디슨의 뒤를 이어 GE사와 웨스팅하우스사의 경쟁 그리고 거대 전기회사들의 등장으로 전기시스템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공고한 기반을 마련한다.


석유와 전기의 사용이 공고화 되면서 공장제 시스템은 한 단계 더 도약하게 된다. 석유와 전기가 공장에 공급되고 이를 동력으로 사용하는 기계가 점차 공장에서의 대량생산에 최적화 되면서 이제 공장제 시스템은 방직산업을 넘어 제철과 화학 그리고 자동차 산업 등으로 퍼져나갔다. 특히 자동차를 생산하던 포드사가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도입하기 시작하면서 분업화가 촉진된다. 이제 더 이상 장인은 자신의 생산체제를 유지할 수 없었다. 그들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생산수단을 포기하고 공장에서 자신의 노동력을 팔 수 밖에는 없는 처지가 된다. 새로운 자본-노동 관계는 급속도로 퍼져나가면서 이제 자본주의는 그 화려한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2]


시공간압축


공장에서의 눈부신 생산성 향상이 화석에너지가 가져다 준 선물의 전부가 아니다. 화석에너지가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나타난 시공간 압축 현상은 자본주의에게 또 하나의 축복이었다. 누구나 예상하겠지만 중세에는 도시간 이동이 자유롭지 않았다. 도보나 말을 이용해 어느 한 지역에서 다른 곳으로의 이동을 하는 것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일이었으며 하나의 사건이 유럽 전역에 퍼지기까지 몇 개월은 족히 걸렸다. 하지만 화석에너지는 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18
세기 이전의 수송수단을 생각해보자. 전통적인 수송수단으로 인류가 이용한 것들은 대부분 동물이나 자연의 힘에 의존한 것이었다. 육로 교통의 경우는 대부분 동물의 힘에 의존해 사람과 화물을 수송하는 마차가 이용됐다. 동물이 동력을 제공하는 수송수단의 경우 한 번에 옮길 수 있는 수송량에 한계가 있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수송에 드는 비용과 시간이 만만치 않았다. 17세기 40 리브르에 구입할 수 있었던 포도주 400리터를 독일에서 프랑스까지 운반하고 나면 가격은 100~120 리브로까지 상승했다. 그 때의 도로사정도 이러한 열악한 상황에 일조했다. 마차가 다닐 수 있도록 포장이 되어 있는 도로는 많지 않았고 그나마도 비나 눈이 오는 궂은 날씨에서는 이용이 불가능 해지기 일 수였다.


해상 교통은 바람을 이용한 범선을 통해서 이루어 졌다. 해상의 경우도 육상교통과 다를 바 없었다. 해상교통은 값비싸고 안정적이지 못한 운송체제였다. 1500~1635년 리스본을 출발하여 인도로 향한 배의 통계를 살펴보자. 그 당시 출항한 범선의 수는 852척인데 그 중 약 20% 169척이 침몰할 정도였다. 상업적 목적으로 무언가를 실어 나르기에 전통적인 수송 시스템은 너무나 불안정했다.


화석에너지는 인류가 이러한 한계를 뛰어넘게 도와주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19세기에 들어 석탄을 이용한 증기선과 기차가 등장한다. 증기선을 이용한 대륙간 운송과 전통적인 운송수단에 비해 더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화물을 운반할 수 있게 해주었다. 기차 역시 마찬가지여서 비교적 가까운 지역 간의 대량운송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20세기 들어서 등장한 자동차와 비행기 그리고 대형 컨테이너선은 시공간 압축의 연장선 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화석에너지에 의존한 시공간 압축은 산업의 분업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기존에는 불가능 했던 분업체계, 특히 도시와 농촌 사이의 분업은 자본주의 발전에 있어 주요 원동력이 된다. 광산지역에서 채굴된 석탄의 수송이 자유로워지면서 석탄이 풍부하지 않은 곳
[3]에도 거대공장들을 중심으로 한 대도시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도시의 공간구조가 전적으로 공장시스템에 맞추어 변화되기 시작하면서 기존의 자급자족적인 구조는 붕괴하게 된다. 따라서 도시에 거주하는 노동자들을 위해서 외부, 즉 농촌에서 대량의 농산물이 안정적으로 값싸게 공급되어야 했는데 이 역시 화석에너지를 기반으로 한 수송시스템이 있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


시공간 압축은 도시와 농촌의 분리뿐 아니라 도시 안 공간의 재구성에도 일조한다. 도시 안에서 사람과 화물의 수송을 담당하던 마차 대신에 근교전차가 도입된다. 근교전차가 건설되면서 도시는 팽창하기 시작한다. 도시의 중심에 대규모 아케이드가 만들어 지고 도로가 확장되면서 바둑판형 구조가 점차 모습을 드러낸다. 도심지에서 상업시설이 주를 이루는 반면 도시 근교에는 주거시설이 들어선다.


전차노선을 따라서만 팽창할 수 있었던 도시는 이제 자동차의 등장과 함께 이러한 제약마저 무너진다. 자동차가 주요한 수송수단으로 자리잡으면서 공공시설과 쇼핑시설은 철저히 자동차라는 수송수단에 적합한 형태로 계획되고 건설된다. 193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건설된 뉴욕의 맨하튼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현대의 사람들이 대부분의 일과시간을 도시 중심부에서 휴식은 도시근교의 베드타운에서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모두 화석에너지 덕분이다.


농업



도시와 농촌의 분리가 오직 화석에너지를 사용하는 운송수단에 의해서만 이루어 진 것은 아니다. 이는 대규모의 농업생산력 증대도 함께 요구하는 일이었다. 농촌에서의 농업생산력 증대는 18~19세기 제 2차 인클로저 운동과 산업혁명의 합작품이다. 산업혁명의 동력 중 하나였던 방직산업은 대량의 원료를 필요로 했다. 동시에 도시의 확대 급속도로 확대되면서 농산물의 수요 역시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이러한 기회를 놓칠 리 없던 지주들은 사유지 중간중간에 섞여 있던 공유지를 사유화시켜 분산되어 있던 공유지를 사유화시켜 대규모 농지로 만들 필요성을 느꼈고 이는 제 2차 인클로저 운동으로 이어진다. 거대한 단일 농지가 만들어짐과 동시에 대규모 자본 투하가 이루어 지자 생산력이 증대되기 시작했다. 생산력의 증가가 가져다 준 이윤에 자본가들은 더 큰 자본을 농업에 투자했다.


이에 더해 20세기 초부터는 흔히 우리가
녹색혁명이라고 불리는 것이 화석연료를 통해 이루어 진다. 우선 농업에서 수 천 년 동안 해결되지 못한 채 남아있던 질소부족문제를 해결하는데 화석연료가 사용된다. 질소부족에 대한 전통적인 해결방법은 동물의 분뇨로부터 만들어 지는 퇴비를 주거나 남아메리카에서 생산되는 구아노라는 원료를 이용하는 방법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두 가지 방법으로는 토양에 부족한 질소를 충분히 보충해 주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마침내 1909년 독일 화학자 하버와 보슈에 의해 공기중의 질소와 수소를 결합하여 암모니아를 생산하는 공정이 개발되었다. 이 공정에서 암모니아 구성물질 중 수소를 제공하는 것은 다름아닌 화석연료였다. , 간단한 도구와 인간의 노동력에 의해서 생산되던 것이 기계로 대체되면서 대규모의 토지에서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녹색혁명으로 농산물 생산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고 농촌은 도시 노동자들에게 충분한 농산물을 공급할 수 있게 된다.


생산력이 증대되면서 자연스럽게 농촌에는 많은 수의 실업자가 생겨났다. 인클로저 운동으로 일반 소농들은 토지를 잃고 자신의 노동력을 농업자본가에게 팔기 시작한다. 하지만 향상된 생산력으로 인해 농촌에서 구할 수 있는 일자리의 수는 줄어들었다. 모든 농민들이 농촌에서 자신의 노동력을 팔 수는 없게 된 것이다. 일자리를 잃은 이들은 대규모로 도시로 유입되었고 다행히도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공장의 노동력 수요가 이들을 흡수할 수 있었다. 도시로 이동한 이들,
산업예비군이 있었기에 자본가들은 형편없이 낮은 임금으로 이들의 노동력을 사용할 수 있었고, 이렇게 축적된 자본으로 자본주의는 더욱 번성하게 된다.


상품 생산과 소비


공장제 시스템과 시공간의 압축 덕분에 시장으로 상품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영국 면제품을 살펴보면 18세기 초에 연평균 111만 파운드에 불과했던 생산량이 19세기 초에는 4180만 파운드로 40배 이상 증가했다. 생산성 향상으로 상품의 생산량이 많아 졌다는 사실 이외에 여기서 한가지 더 눈 여겨 볼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화석연료가 기계나 수송수단의 동력으로뿐 아니라 다양한 산업의 원료로도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20세기 이후 화석연료 특히 석유에서 다양한 물질이 추출 가능해 지면서 화석연료는 기존의 전통적인 물질들을 대체해나가기 시작했다. 각종 기능성 화학섬유, 인공고무, 플라스틱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비료까지 지금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상품은 화석연료에서부터 추출된 것이다. 석유산업과 이를 둘러싼 거대 산업들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이와 같은 현상은 점점 더 가속화 되고 있다. 


폭발적으로 증가한 상품은 국내와 해외에서 소비되었다. 국내의 상황을 살펴보면 마침 화석에너지 사용으로 증대된 농업생산력 덕분에 사망률이 줄어들면서 국내인구가 상당히 증가 했는데 이들이 공장에서 만들어 낸 상품을 소비하는데 큰 기여를 한다. 국내에서 소비되지 못한 상품은 해외로도 수출되었다. 만일 예전과 같이 말과 바람에 의존한 값비싸고 불안정한 수송시스템이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화석에너지의 사용으로 인해 자본주의는 20세기 들어 인류 역사상 존재했던 어떤 체제보다도 빨리 성장할 수 있었다. 기업외부에 상품의 일정 부분의 생산을 이전하는 아웃소싱의 발달로 어디에서나 원료와 부품을 공급받을 수 있게 된 다국적 기업은 세계 곳곳에 대규모 생산기지를 만들어 상품을 생산해고 있다. 화석에너지 덕분에 가능해진 정보통신의 발달로 전세계 잉여자금은 하루 사이에 미국, 영국, 일본의 금융시장은 차례로 이동하면서 이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어두운 밤은 더 이상 인류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게 된다. 도시의 어느 곳에서나 환하게 밝혀진 불빛아래에서 쇼핑을 즐기며 자신의 욕구를 마음껏 충족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식탁 위에서 우리는 제철이 아닌 농산물을 쉽게 만날 수 있게 됐고, 점차 지구 반대편에서 생산되어 수송된 열대과일에 익숙해지기 시작한다. 누구나 돈만 있으면 유럽에서 생산된 명품을 소비할 수 있고, 비행기를 타고 아프리카로 날아가 초원 한 복판에 있는 쾌적한 호텔 방안에서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자본주의는 화석에너지를 사용하여 지구 어느 곳에서나 24시간 365일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결과적으로 자본은 화석에너지가 만들어놓은 에너지 시스템 위에서 놀라울 정도로 자신의 회전속도를 높이게 된다.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하자는 자본주의의 모토는 화석에너지 때문에 완성될 수 있었다.


결과

지금까지 살펴봤듯이 자본주의가 유지되기 위해서 화석에너지의 사용은 필수적이다. 화석에너지는 농업, 상품생산, 수송 그리고 소비생활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화석에너지에 기대어 있는 높은 생산성과 막대한 잉여를 자본주의가 포기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금전적 이윤을 차지하더라도 문제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가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이 화석연료에서 나오는 현실을 생각해보면 화석에너지에 대한 고민의 시작은 지금 우리가 소비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다른 무언가로 바뀌어지거나 적어도 다른 방법으로 생산을 해야 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생산과 소비구조를 건드리지 않은 채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이런 이유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외면하다 보니 그 결과도 좋지 않을 수 밖에 없다. 지금과 같이 화석에너지의 사용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지 않는 상황에서 대기오염과 기후변화의 주범인 화석자본주의는 너무나 큰 권력을 얻어버렸다. 누구도 이를 막지 못하고 바라만 보고 있다.


문제는 단순히 환경이 파괴된다는 것에 있지 않다. 화석연료가 가져다 주는 불행이 자본주의 안에서 만들어진 계층마다 다른 결과를 가져다 준다는 사실은 단순히 환경이 파괴된다는 사실에 가려지기 십상이다. 기후변화로 기후재해가 극심해 지면 연안에 별장을 가지고 있는 부유한 계층이 아니라 연안에서 자신의 생활을 꾸려나가는 가난한 계층에게 큰 충격이 되어 돌아온다. 이는 실제로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뉴올리언스가 침수되면서 만천하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화석연료 사용으로 이득을 보는 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언론과 정치에 대한 지배력을 이용하여 애써 축소시킨다. 더 나아가 최근에는 자신의 논리 속으로 흡수하고 새로운 이익기반을 창출하는데 까지 이른다.[4]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없는 자의 몫으로 남는다.


이들은 석유를 지키고자 전쟁까지도 불사한다. 석유와 천연가스가 풍부한 지역은 어김없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거나 독재정권이 들어서기 다반사다. 국제사회는 겉으로는 민주국가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석유와 가스가 풍부한 제 3세계의 독재는 묵인하기 일 수다. 지금은 누구나 인정하는 미국의 명분 없는 이라크 전쟁을 지지면서 파병을 연장하고 있고, 버마에서 채굴하는 가스에 눈이 어두워 버마 민중의 민주화 운동에는 눈 감아 버리는 한국의 행태 역시 비난 받아 마땅하다.


이번 태안의 기름유출은 지금의 화석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모순을 적나라게 보여준다. 사고에 대한 만반의 준비와 통제가 때로는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기 마련이다. 아무리 과학이 발전한다고 할지라도 인간의 통제력이 완벽할 수는 없다. 유조선의 기름유출 사고[5]는 인간의 통제력을 넘어서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수 밖에 없으며 우리는 그것에 대한 대비가 아니라 우리가 사용하는 화석에너지 자체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태안 기름유출사고와 관련된 사고 당사자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기에 앞서 우리 자신의 생산과 소비 양식을 다시 한번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필요가 있다.



[1] 지금의 계산방법으로 산업혁명 시기의 경제성장률을 조사한 결과 연 0.5~2%에 불과했으니, 산업혁명 전 시기의 경제성장률은 미루어 짐작 할 수 있을 것이다.

[2] 일자리를 잃은 소규모 공방의 장인들이 기계를 부수기 시작한 러다이트 운동은 새로운 노동 관계가 그들에게 그리고 사회에게 크나큰 충격이었음을 대변해 준다.

[3]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가장 먼저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풍부한 석탄이었음을 생각하면 여전히 물리적 제약이 존재하고 있었지만, 수송능력의 증가로 인해 석탄이 생산되던 국소적 지역에서만 사용되던 한계에서는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4] 기후변화관련 상품과 펀드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5] 같은 맥락에서 핵폐기물을 핵 폐기장까지 이동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사고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작성    최현도

2008/02/25 17:15 2008/02/25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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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aviar sex 2008/05/23 05: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용한 정보. 좋은 디자인.

  2. fetish claudia 2008/05/23 07: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걸출한 위치! 많은 감사.

  3. naked camp 2008/05/23 07: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합의한다 너에 이다. 그것은 이렇게 이다.

  4. la petite sirene 2008/05/24 02: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같지 않는 블로그!

  5. big boner in my face 2008/05/24 03: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중대하고 유용한 위치!

 

태안사건(삼성-허베이 기름유출사건)을 보며





태안 앞바다에서 1 만 톤의 기름이 유출되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대선이라는 큰 사건 속에서도 태안사건(삼성-허베이 기름유출사고)1)은 관심을 받으며 40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태안을 다녀가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손을 통한 방제가 최선이라고 할 때, 이렇게 많은 이들이 자발적으로 다녀간다는 것은 한국 사회에 작은 희망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자원봉사와 삼성의 틀을 넘어서


하지만 자원봉사에 대한 열광적인 언론 보도는 오히려 많은 쟁점과 현실을 묻히게 하고 있습니다. 연일 계속되는 자원봉사에 대한 보도는 대선후보와 기업 이미지 쇄신을 위한 이벤트로 점철되고 있으며, 어민들의 생계 문제와 보상의 어려움은 제대로 이슈화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1차적인 책임의 소재만을 찾아서 이야기하는 운동단체들의 발언도 많은 것들을 놓치고 있습니다. 물론 정부가 단일선체를 규제하지 않은 것, 삼성이 제대로 된 사과발언조차 하지 않은 것은 커다란 문제입니다. 그리고 씨프린스 호 때의 배상처럼 제한적인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지역 공동체와 생태계의 재생을 위한 기금 마련을 오염자인 삼성이 부담해야 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문제는 화석자본주의


그러나 삼성기름유출사고는 자원봉사, 삼성의 책임, 정부의 규제가 적었다는 것만으로 해석되어서는 안됩니다. 한걸음 나아가서 우리는 화석연료의 채굴과 운송, 사용에서 일어나는 - 전쟁과 기후변화, 대기오염 등 - 사회 문제와 환경 파괴의 맥락 속에서 이 문제를 파악해야 합니다. 또한 화석연료의 사용이 자본주의적 생산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지 깨닫고, 태안기름유출사고를 한국사회의 반자본주의적, 생태적 사회로의 전환에 대한 사고의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화석연료는 자본주의의 역사적 발전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선택된 연료입니다. 역사적으로 수력과 목재의 불충분한 공급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가속화와 공간적 확대를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선택된 것이 석탄이었으며 20C에는 석탄 사용량의 꾸준한 증대에도 불구하고 석유가 더 많이 쓰이게 되었습니다. 화석연료의 여러 특징이 자본의 가속화된 축적을 가능하게 해주었습니다. 화석연료는 1) 장소에 관계없이 자본이 원하는 만큼 2) 계절이나 시간에 관계없이 비축하고 투입이 가능하며, 3) 집중화되고 집적화된 생산이 가능하게 만들어줍니다.


  기름유출사고는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자본주의가 가지게 되는 구조적인 문제점입니다. 전지구적으로 한해 1000여건의 크고 작은 기름유출사고가 일어나며, 90년 대 동안 태안 기름유출량의 100배에 달하는 100 만 톤의 기름이 바다로 쏟아져 들어갔습니다. 그나마 이것은 70년대에 300 만 톤이었던 것이 줄어든 수치입니다.


그러니 1차 에너지의 65%(2006년 금액대비)를 석유로 충당하고 있으며, 허베이 스프리트 호의 774배에 달하는 8억 8천 9백만 배럴(유출된 기름의 1 만 배)에 상당하는 석유를 수입하는 한국에서 커다란 기름유출사고가 15년이나 일어나지 않은 것은 그야말로 놀라운 일입니다. 1년에 우리가 쓰는 석유의 0.01%만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도 이런 엄청난 재해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15년만의 사고이니 다시 계산하면 0.001%만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도 이런 파괴가 일어난다고 말해도 과장은 아니겠지요.



피해는 누구에게로 가는가


항상 피해는 사회적으로 약한 사람들에게 돌아갑니다. 이번 문제가 얼마나 화석 자본주의와 연관되어있는가 지적하는 것은, 자본주의 하에서 이윤창출 과정에서 생겨난 사회적, 환경적 피해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하는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제도적, 법적 틀 안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맨손 어업민들 그리고 누구도 대변해주지 않는 생태계의 많은 생물들은 어렵고 복잡한 배상절차 속에서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합니다. 태안사건은 환경적 피해가 어떻게 약자에게 전가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앞서 배상의 필요성을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배상이라는 것의 한계성을 인정하고 최소한의 것으로서 이해될 필요가 있습니다. 생태계, 그리고 그와 함께 파괴된 공동체는 결코 원상 복구될 수 없습니다. 주민들은 지역의 해안 생태계에 의존해서 살고 있었고, 그러한 생태계가 장기적으로 파괴된 상황은 곧 공동체의 파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환경 문제가 발생하면 1차적으로 자연에 의존하던 - 즉, 근대사회에서 가장 주변부에 위치한 - 이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입니다. 결국 생계가 어려워지는 사람들은 누군가 강제하지 않더라도 일거리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되는 도시 인근 지역으로 이주할 수 밖 에 없으며, 결국 이것은 도시 빈곤층의 증가를 의미합니다.


공동체의 파괴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단순히 돈을 벌 수단이 사라져 '이주'한다는 것 정도를 의미하진 않습니다. 마을 공동체는 마을 주민들에게 정신적 문화적 사회적 자원입니다. 수 십 년 동안 함께 한 공동체 생활은 사람 사이의 유대, 고향이라는 장소에 대한 감정 등을 생성해내고 이것은 주민들의 삶의 의미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합니다. 이런 공동체가 무너지는 경험은 정서적 공황을 불러오며 이것은 평택, 부안, 새만금 등지에서 주민들의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정서적이고 문화적인 자원은 돈으로 메워질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공동체의 붕괴에 대한 담론은 실종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지역 공동체가 붕괴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한반도가 세계적 자본주의의 질서에 편입되고 근대화의 전철을 타는 순간부터 1차적으로 자연에 의존하던 지역 공동체들은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영국처럼 인클로저 운동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여러 기제들이 있어 지역 공동체의 붕괴와 근대적 도시의 성장을 가속화시켰습니다. 여기에는 농산물 가격을 저가로 유지하는 것과 같은 경제적 요인, 신분제의 유산이 남아있던 것처럼 보일 정도의 (도시에서나 받을 수 있는 근대) 교육에 대한 열망, 근대적 도시에 비교되는 문화적으로 낙후된 지역이라는 이미지 등 다양한 요소가 작용했습니다. 도시로 나온 이주자들은 임노동자가 되었고, 이것은 자본주의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요소였습니다.


댐, 골프장, 새만금, 핵폐기장, 기업도시, 재개발 등 근대화의 산물들은 모두 지역 공동체를 붕괴시키는 주요한 현상들이었습니다. 이제 태안의 기름 유출 사고도 이 긴 목록에 추가 되었습니다. 태안의 사건을 관리하지 못한 사고로만 여긴다면 그것은 아무런 맥락도 가지지 않은 것이 될 겁니다. 그러나 이것을 지금까지 공동체를 무너뜨려온 힘 - 즉 근대화와 그 물적 토대로서의 자본주의 - 에 의해 일어난 일이라고 해석한다면, 태안의 공동체 붕괴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배상의 문제로 돌아가 볼까요. 새만금의 경우 서해안에 위치하고 갯벌에서 맨손어업을 하던 주민이 많았던 점 등이 태안 등 서해안 피해 지역과 유사한 상황입니다. 이걸 토대로 기존의 배상 속에서 드러난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 구조, 계급적 상황에 대해서 살펴봅시다.


[보상에서의 문제]


새만금 공사가 진행되고 보상이 이루어졌다. 여기서도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먼저 구체적으로 보상이 어떻게 주어졌나 보자.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신고를 해야 했다. 신고 기간 안에 제대로 신고를 하지 못한 사람의 경우 이전까지 어업에 종사했더라도 ‘선외’로 구분되어 보상을 받을 수 없었다.

그리고 주로 여성이 해 온 갯일의 경우 3년간의 수입을 보상해주는 것이었고 1등급에서 6등급으로 나누어 200~1000만원의 보상금이 지급되었다. 주로 남성이 해온 선박 어업의 경우에는 5년간의 수입을 보상해주는 것이었고, 선박이 10톤 미만일 경우 톤수에 따라 3500~7500만원의 보상이 주어졌다. 그리고 한 가정에서 최대 2명만이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양식업과 같은 면허 어업의 경우 양식장의 시설에 따라 수억의 보상금을 받았다.

여기서 갯일은 3년, 어선 어업의 경우 5년의 수입을 보상한다는 것에서의 불공평성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가구에 2인 제한을 두면서 보통 보상은 여성보다는 남성이 받게 되었다. 또한 실제 맨손어업에는 여성이 많이 종사하지만 더욱 많은 남성이 보상금을 받았다.(남성 498명 여성 470명) 보상금의 금액에 있어서도 실제 갯일로 벌어들이는 금액보다 훨씬 적은 돈이 제시되었다. 한 달 100~200만원, 1년이면 보통 1600만원을 넘어간다. 하지만 3년간의 보상으로 주어진 것은 최대 1000만원 이었다.

성차별적이고 가부장적으로 집행된 보상에 의해 이전까지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여성들의 위치는 급격히 하락했다. 배를 타고 반년 이상 객지에 나가 운에 따라 빚을 지기도, 돈을 벌어오기도 했던 남성들과 달리, 맨손어업을 통한 수입은 꾸준한 소득을 보장했다. 실제로 생계를 짊어진 것은 여성이었다.

면허어업의 경우 특히 지역유지, 공무원과 손이 닿은 사람들, 그리고 돈이 있는 사람들만이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 건수는 적지만 가장 많은 보상을 받았다. 이들에 대한 흉흉한 소문과 보상에 대한 불평등은 지역 사회를 더욱 휘청거리게 만들었다.


[씨알 2005년 여름 새만금 현장활동 자료집 중 - "새만금, 그곳엔 여성들이 있다. 윤박경." 에서 참조한 글]


물론 태안의 경우 새만금과 완전히 똑같은 방식이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면허어업과 어선어업/맨손어업 종사자들의 액수 차이, 너무나도 적은 보상비, 그것도 가부장적 구조가 그대로 반영되어서 보상이 된 점은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세한 어민들, 맨손어업 주민들, 민박집 등 기존의 국가의 관료 시스템으로 잘 통제되지 않던 사람들의 배상은 더더욱 어렵습니다. 소득을 증빙하는 자료가 있어야 하는데, 영세 어민들은 영수증 없이 현장에서 거래를 해왔다고 합니다. 맨손어업의 경우 면허를 갱신해야 하는데, 갱신비, 절차 등이 있어 그냥 면허 갱신 없이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민박집의 경우도 소득 증빙을 할 방법이 거의 없습니다. 이렇게 근대적 국가에 체계적으로 편입되지 못하고 주변에 위치한 사람들은 환경적 부담을 그대로 떠안게 됩니다. 더불어 제대로 신고조차 하지 않고 지금까지 탈세를 저질렀다는 도덕적 비난까지 함께.

정신적 문화적 자원인 공동체를 잃을 위기에 처하고, 그나마 생계를 이어가던 수단도 사라진 주민들에게 또 하나 남은 장벽은 바로 건강의 문제입니다. 원유는 정제되지 않은 기름덩어리로 다량의 발암물질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건 초기에 원유의 30%가 휘발되었다고 추정되는데 이것은 주민과 자원봉사자들에게 다량 흡입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휘발되는 성분은 다방향족 탄화수소와 발암물질인 톨루엔 벤젠 등입니다.


주민들의 대부분이 노령화되어있으며, 일당을 받으며 장시간 방제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은 장기적인 건강 문제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큽니다. 급성 증상으로 구토와 어지러움을 호소하며 병원으로 호송된 사례가 생겨난 것과 방제에 투입된 주민의 절반 정도가 여러 증상을 호소했습니다. 이런 문제는 짧게라도 노출되는 자원봉사자들에게도 미약하게나마 나타날 수 있습니다. 건강 문제는 환경적 피해를 짊어지는 한 가지 양상입니다.



자연통제의 환상


사건 이후 한국의 관료와 방제 (기술) 시스템은 그 무능력을 여실히 드러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의 관료와 기술자들을 비웃는 것으로 그칠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자연을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하는 믿음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초기에 정부는 기름유출사고가 그렇게 크지 않으며 멀리 퍼지지 않은 채 해결될 수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날이 되면서 그 말을 주워 담아야 했습니다. 예상보다 기름이 퍼지는 속도가 빨랐던 것입니다. 미리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게 요동치는 조류를 따라서 기름은 태안과 보령을 덮치고 그보다 아래에 있는 전라도 제주도까지도 흘러내려갔습니다. 사태 초기에서부터 자연에 대한 완전한 파악은 불가능했고, 자연의 역동성 앞에서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그리고 정부가 내놓은 기술적 해결책은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를 낳는 것들이었습니다. 유화제의 과다한 사용은 겉으로는 기름을 사라지게 합니다. 하지만 1차적으로 유화제라는 화학물질 자체가 오염을 일으킵니다. 유화제는 다르게 말하면 기름과 물이 섞이게 하는 세제(혹은 계면활성제)입니다. 이 물질 자체가 일으키는 오염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러한 독성에 대한 인식이 있기에 정부 측에서는 씨프린스호 사건 이후 다음과 같은 자체 수칙도 만들었다고 합니다. 


"12년 전의 시프린스 호 사고 이후 수심 10m 이하의 해역과 어장 양식장에 3시간 이내에 도착하는 지역에서는 유화제를 전혀 사용할 수 없으며, 수심 10~20m 지역은 조심스럽게 사용하고, 기타 지역은 책임자가 판단 한다"


2차적으로는 잘게 분해된 기름이 바다 생물들의 몸에 쉽게 흡수된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가라앉은 기름들은 사실상 인위적 처리가 불가능하며, 해안의 바닥에 모여 있다가 수온이 변하면 다시 올라와 2차 피해를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작은 구슬처럼 분해된 기름은 손을 통한 방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어떻게 퍼내거나 흡수시킬 방도가 없다는 푸념이 곳곳에서 나옵니다.


고온고압 세척의 경우에도 다른 문제를 가져옵니다. 갯벌과 바위 틈 모래에는 미생물들이 많이 살고 있으며 여전히 살아있는 생명체들도 붙어있습니다. 하지만 고온고압(약 80도)의 물로 세척할 경우 열 쇼크로 많은 생물들이 죽으며, 이것은 기름의 자연분해를 더디게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유명한 사례인 액손 발데즈 호 사건의 경우 고온고압세척을 실시한 해안이 그렇지 않은 해안보다 생태계 복구가 더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고온고압세척 뿐 아니라 큰 가마솥에 돌을 넣고 끓이는 일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결국 방제를 위한 여러 기술들은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여러 문제를 복합적으로 만들어냅니다. 오히려 손을 통해서 직접 닦고 그러면서 어느 정도는 자연적으로 정화되길 바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생태계 친화적인 방법이라고 환경단체와 전문가들은 주장합니다. 해경은 1만 5천 톤의 기름 유출 사태에 대응할 수 있도록 방제시스템을 갖추었고 지휘체계도 해경으로 일원화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 나타난 것은 이런 무력함이었습니다.


근대적 국가는 환경오염이라는 근대의 부산물을 처리하는 방법으로 전문가와 그들이 생산해낸 기술지식에 의존하는 관료 제도를 발전시켰습니다. 환경영향평가라는 제도와 환경부라는 기구는 이러한 관료 제도의 현상 형태입니다. 이런 것들은 과학기술이 자연에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고, 또한 감소시킬 수도 있다고 믿는 데서 나온 제도입니다. 즉 인간이 자연을 통제하고 관리가능하다는 믿음이 있기에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근대 국가의 관료 체계는 자연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통제하지 못했습니다. 서울의 대기 질은 여전히 세계 최악의 수준입니다. 팔당 상수원은 그 많은 비용의 투입에도 불구하고 결코 1급수가 되지 못했습니다. 시화호 또한 - 과학적 예측의 - 대표적인 실패의 사례입니다. 이런 긴 실패의 사례들 끝에 태안 사고도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실패를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일들이 요구됩니다. 먼저 근대 과학기술에 대한 맹신을 버려야합니다. 과학적이라는 말은 객관적이고 이성적, 중립적이라는 단어를 뒤에 숨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신화에 불과합니다. 과학기술 자체가 정치를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을 뒤로 한다 해도, 과학기술이 작동하는 제도 - 즉 연구소와 대학, 평가기관들 - 는 자본과 국가의 이해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그리고 근대 과학지식이 자연을 이해하는 데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여전히 우리는 자연의 많은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생태계의 상호작용들, 지하수의 움직임 같은 것들은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전문가들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또한 환경 문제를 과학기술이 다루는 문제라고 생각하는 데서 벗어나야 합니다. 환경 문제는 자연과 인간 사회의 상호 작용 속에서 일어나는 문제입니다. 서울시의 대기질 문제는 대기과학자들이 분석해서 해소시킬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자동차로의 이동이 강제되는 도시의 정치경제학에 대한 분석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기후변화 문제도 과학으로만 풀릴 수 없습니다. 이것은 화석에 의존하는 자본주의에 의한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이윤을 포기하면서 자본이 기후변화를 해결하려고 노력할까요.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국가들은 어떻게든 이산화탄소 감축량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대신 새로운 자본의 이윤 축적 동력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중 하나가 대규모 플랜테이션으로 생산되는 바이오연료입니다. 이 과정에서 국가와 자본에 의한 또 다른 환경 파괴와 원주민의 공동체 파괴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또한 지오엔지니어링이라 불리는 - 탄소를 포집해 심해에 저장한다던지 하는 - 여러 해법들은 자본의 이해를 침해하지 않고 오히려 이윤 축적을 도와주면서, 자본에 의해 생겨난 위험을 자연과 인간에게 전가시키는 일입니다. 


태안 기름 유출 사고도 생태 전문가들, 해양 전문가들만이 발언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고 기름의 효과적인 제거와 이중선체 의무화라는 기술적인 해결책에만 몰두해서는 안됩니다. 과학기술이 밝혀주지 못하는 사회와 자연의 관계에 대해 탐구하고 발언해야만 합니다.

   

책임 묻기


이제 유조선과 인양선이 충돌한 그 순간으로 돌아가 봅시다. 유조선(화주는 현대오일뱅크)은 정박 중이었습니다. 여기에 예인선에 이끌려 움직이던 크레인(삼성물산 소유, 삼성중공업이 임대)이 밧줄이 끊어져 통제 불능의 상태에서 유조선과 부딪힌 것입니다. 단일선체였던 유조선은 검은 원유를 흘리게 되었습니다. 폭풍우 속의 무리한 운항, 경고에도 불구하고 운항한 것들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정부는 관련된 실무자들을 처벌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배상은 유조선이 들어있는 보험사와 국제유류보상기금(IOPC)이 지불하게 되어있습니다. 또한 사업자 보호를 위해 책임제한조항도 한국 법에 있습니다. 즉 유조선 선주와 삼성 중공업은 몇몇 관련 인사의 처벌만 있을 뿐, 실질적인 배상에는 관여하지 않고 손해 보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보험사와 유류보상기금이 주도하는 배상절차는 주민들에게 무척 어려운 과정이고, 청구된 금액의 30%정도만이 인정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자본 축적에서 발생한 문제와 충격은 자본주의적 충격완화 시스템 - 보험 - 과 주민과 자연에 대해 비용을 떠넘기는 방식으로 완화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언론에서 3천억 원의 배상한도를 이야기하는 것은 유류보상기금의 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유류오염배상보장법 제 6조에는 "선박 소유자 자신의 손해발생의 염려가 있음을 인식하면서 무모하게 한" 행위로 말미암아 생긴 피해에는 책임제한이 배제된다고 되어있습니다. 즉 손해배상한도를 넘어가는 책임에 대해서는 무한책임을 각 회사들이 져야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장기적인 공동체에 대한 지원, 생태계의 장기적 모니터링과 기록, 지속적인 방제, 봉사활동의 지원, 의료적 지원 등에 대한 비용이 모두 포함되어야 합니다.


단일선체에 대해선 한국 정부의 규제가 제대로 없었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단일선체가 분명 사고 피해를 키운 원인 중 하나이며, 앞으로도 한동안 석유 수입이 계속될 상황에서 이중선체로의 전환이 위험을 어느 정도 줄일 것이라는 것은 고려되어야 할 사항입니다. 하지만 이중선체로 바뀐다고 해서 이 치명적인 유출이 얼마나 통제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선박기름유출사고는 유조선이 아닌 일반 대형선박에서도 일어나는 일입니다.


또한 세계적인 위험의 분배라는 측면을 보지 못한 채 단일선체라는 것에만 집중한다면 이것은 한국에서의 기름 유출의 위험을 다른 국가 - 보통, 한국보다 규제가 느슨한 3세계로 - 의 지역사회와 생태계에 이전시키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것은 석유의 사용이 계속 증대되는 동안에는 계속해서 일어날 일입니다. 결국 국제적 전망을 가지고 화석자본주의에 대한 반대와 생태적 사회로의 전환을 동시에 꿈꾸지 않는다면 한국에서의 이중선체 규제는 보다 자본주의의 중심부를 닮아갔다는 것 이외에 아무런 의미도 주지 않을 것입니다.



연관짓기 : 서해안의 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