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자본주의




화석에너지가 문제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화석에너지가 현대 사회의 심각한 환경문제를 발생시키는 주범이라고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화석에너지의 사용이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농도를 높이고 이것이 온실효과를 발생시켜 수 억년을 걸쳐 안정되게 유지되어 왔던 지구의 기후시스템을 교란시킨 결과 기후변화가 발행하고 있다는 과학적 사실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 결과다. 일단 이러한 과학적 사실을 인식한 후에 우리는 화석에너지의 사용을 줄이는 것과 동시에 이를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해야 한다는 분명한 공동의 목표를 가지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도 우리는 기후변화로 인해 느끼는 위기의식 아래 전세계 곳곳에서 기후변화협약을 비롯한 가지각색의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의문은 좀 더 근본적인 곳에서 시작된다. 화석에너지가 지금 인류가 마주한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란 말인가? 화석에너지가 문제라면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 사용을 줄이는 간단한 목표를 단순히 실행하기만 하면 될 것 같지만 실제로 현실이 돌아가는 모양을 보면 이것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쉽게 알아챌 수 있다. 때문에 우리가 위에서 던진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최근 유엔산하의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에서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실질적으로 우리가 줄여야 하는 온실가스의 총량을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이들이 주장하는 감축양의 아주 작은 부분만을 만족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기후변화협약조차 실행에 어려움은 겪고 있는 현실은 지금의 에너지시스템과 자본주의 사이의 끈끈한 연결고리를 확인하지 않고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문제라 할 수 있다.



화석자본주의


화석에너지와 자본주의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자본주의가 그 태초에서부터 가지고 있었던 모순을 해결하고자 끊임없이 요구했던 것에 대한 실제적인 응답이며 결과이다. 우리가 화석자본주의에 대해 이해하고자 한다면 우선은 생존을 위해 필요한 물건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체제인 자본주의의 역사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자본주의의 태동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석탄을 증기기관에 사용하여 자본주의의 잠재력을 폭발시킨 18세기 말의 산업혁명으로 보고자 한다.


공장제 시스템


18세기 영국의 상황으로 돌아가보자. 세계 곳곳에서 확보한 광활한 식민지와 방직산업의 번창으로 영국은 세계의 부를 독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규모의 가내수공업으로는 그 성장의 한계가 명확했다. 사실 그 당시의 경제성장률은 지금과 비교했을 때 별 볼일 없었으며 생산성은 한없이 낮기만 했다.[1] 이 때 등장한 것이 증기기관이다. 사실 최초의 증기기관은 1712년 뉴커먼에 의해 고안되었지만 처음에 만들어진 증기기관은 많은 기술적 문제를 가지고 있었기에 실제 사용은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좀 더 강력한 동력을 요구하는 산업적 수요에 부응해 18세기 말 와트가 석탄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개량된 증기기관을 선보였고 이는 성장에 한계를 보이고 있던 당시의 생산체제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덕분에 기존에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던 목재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방대한 에너지를 가진 화석연료를 사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공장에서는 석탄이라는 강력한 에너지원을 사용한 대규모의 자본집약적 기계 덕분에 눈부신 생산성 향상이 이루어 졌다. 그 당시 공장이라는 생산공간은 일반적인 형태가 아니었다. 대부분의 물건은 집안에서 직접 만들어 지거나 혹은 공방의 장인들의 엄격한 통제아래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화석에너지와 증기기관을 바탕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해지자 기존의 것은 공장 생산체제로 서서히 대체되기 시작했다. 가족구성원에 의해 가정에서 혹은 장인에 의해 공방에서 이루어 지던 소규모 생산으로는 더 이상 공장제 시스템의 생산성을 이겨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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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 석탄의 뒤를 이어 20세기 석유와 전기가 중요한 동력원으로 사용되면서 생산성 향상 경향은 가속화되기 시작한다. 우선 석유부터 살펴보자. 사실 석유 사용의 역사는 로마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에는 화염투척장치나 윤활유로 극히 적은 양이 사용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19세기 중반부터 미국에서 최초로 상업적 석유시추가 가능해지면서 대규모로 값싼 석유가 생산되기 시작한다. 석유가 성공적으로 생산되고 사용될 수 있었던 데는 거대한 석유기업들의 역할이 컸다. 당시에 등장한 대표적인 기업이 록펠러의 스탠더드오일사이다. 스탠더드사는 갖은 방법과 수단을 사용해 타 석유회사를 인수하거나 연합전선을 형성했다. 석유는 독점화 되었고 그 결과 그들은 미국에서 막대한 이익을 창출할 수 있었다. 이 시기에 다른 지역에서도 로열더치사나 BP와 같은 지금의 석유 메이저 회사들이 세워졌다.


초기 석유는 멸종위기에 처한 고래의 기름을 대신해 윤활유나 조명용으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전기등의 등장으로 윤활유나 조명에 사용되던 등유의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한다. 이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스탠더드사의 주도아래 석유가 1870년대 오토에 의해 발명된 내연기관의 연료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후 대부분의 기계는 석유에서 나오는 가솔린과 디젤로부터 동력을 얻는 형태로 고안되었다. 이러한 강력한 수요를 바탕으로 석유기업들은 석유 시추부터 전세계 소비자에게로의 분배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석유시스템을 구축하게 된다. 석유를 사용하는 모든 종류의 기계를 생산하는 기업들 또한 이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렇게 거대 석유기업들 사이 혹은 석유산업과 다른 산업과의 연합을 통해 석유는 자본주의 사회에 견고한 뿌리를 내리는데 성공한다.


전기 역시 화석에너지와 따로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는 에너지원이다. 미국의 경우는 약 50퍼센트, 한국에서는 약 40퍼센트의 전기가 석탄으로부터 생산될 정도로 현재 대부분의 전기는 화석연료로부터 생산되고 있다. 하지만 전기가 상업적으로 사용되기 까지는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했다. 최초의 전기발전기는 1834년에 만들어졌지만 상업적 이용이 정착되기까지는 몇 십 년의 시간이 소비됐다.


대부분에게 전구의 발명가로만 알려진 에디슨은 전구의 발명보다는 전기시스템을 사회에 정착시키는데 큰 도움을 준 인물로 평가하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다. 에디슨은 발명가이기 이전에 사업가로 전력의 생산과 배분 그리고 사용에 있어서까지 전기시스템 전반을 설계한 인물이다. 에디슨의 뒤를 이어 GE사와 웨스팅하우스사의 경쟁 그리고 거대 전기회사들의 등장으로 전기시스템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공고한 기반을 마련한다.


석유와 전기의 사용이 공고화 되면서 공장제 시스템은 한 단계 더 도약하게 된다. 석유와 전기가 공장에 공급되고 이를 동력으로 사용하는 기계가 점차 공장에서의 대량생산에 최적화 되면서 이제 공장제 시스템은 방직산업을 넘어 제철과 화학 그리고 자동차 산업 등으로 퍼져나갔다. 특히 자동차를 생산하던 포드사가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도입하기 시작하면서 분업화가 촉진된다. 이제 더 이상 장인은 자신의 생산체제를 유지할 수 없었다. 그들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생산수단을 포기하고 공장에서 자신의 노동력을 팔 수 밖에는 없는 처지가 된다. 새로운 자본-노동 관계는 급속도로 퍼져나가면서 이제 자본주의는 그 화려한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2]


시공간압축


공장에서의 눈부신 생산성 향상이 화석에너지가 가져다 준 선물의 전부가 아니다. 화석에너지가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나타난 시공간 압축 현상은 자본주의에게 또 하나의 축복이었다. 누구나 예상하겠지만 중세에는 도시간 이동이 자유롭지 않았다. 도보나 말을 이용해 어느 한 지역에서 다른 곳으로의 이동을 하는 것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일이었으며 하나의 사건이 유럽 전역에 퍼지기까지 몇 개월은 족히 걸렸다. 하지만 화석에너지는 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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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 이전의 수송수단을 생각해보자. 전통적인 수송수단으로 인류가 이용한 것들은 대부분 동물이나 자연의 힘에 의존한 것이었다. 육로 교통의 경우는 대부분 동물의 힘에 의존해 사람과 화물을 수송하는 마차가 이용됐다. 동물이 동력을 제공하는 수송수단의 경우 한 번에 옮길 수 있는 수송량에 한계가 있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수송에 드는 비용과 시간이 만만치 않았다. 17세기 40 리브르에 구입할 수 있었던 포도주 400리터를 독일에서 프랑스까지 운반하고 나면 가격은 100~120 리브로까지 상승했다. 그 때의 도로사정도 이러한 열악한 상황에 일조했다. 마차가 다닐 수 있도록 포장이 되어 있는 도로는 많지 않았고 그나마도 비나 눈이 오는 궂은 날씨에서는 이용이 불가능 해지기 일 수였다.


해상 교통은 바람을 이용한 범선을 통해서 이루어 졌다. 해상의 경우도 육상교통과 다를 바 없었다. 해상교통은 값비싸고 안정적이지 못한 운송체제였다. 1500~1635년 리스본을 출발하여 인도로 향한 배의 통계를 살펴보자. 그 당시 출항한 범선의 수는 852척인데 그 중 약 20% 169척이 침몰할 정도였다. 상업적 목적으로 무언가를 실어 나르기에 전통적인 수송 시스템은 너무나 불안정했다.


화석에너지는 인류가 이러한 한계를 뛰어넘게 도와주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19세기에 들어 석탄을 이용한 증기선과 기차가 등장한다. 증기선을 이용한 대륙간 운송과 전통적인 운송수단에 비해 더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화물을 운반할 수 있게 해주었다. 기차 역시 마찬가지여서 비교적 가까운 지역 간의 대량운송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20세기 들어서 등장한 자동차와 비행기 그리고 대형 컨테이너선은 시공간 압축의 연장선 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화석에너지에 의존한 시공간 압축은 산업의 분업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기존에는 불가능 했던 분업체계, 특히 도시와 농촌 사이의 분업은 자본주의 발전에 있어 주요 원동력이 된다. 광산지역에서 채굴된 석탄의 수송이 자유로워지면서 석탄이 풍부하지 않은 곳
[3]에도 거대공장들을 중심으로 한 대도시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도시의 공간구조가 전적으로 공장시스템에 맞추어 변화되기 시작하면서 기존의 자급자족적인 구조는 붕괴하게 된다. 따라서 도시에 거주하는 노동자들을 위해서 외부, 즉 농촌에서 대량의 농산물이 안정적으로 값싸게 공급되어야 했는데 이 역시 화석에너지를 기반으로 한 수송시스템이 있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


시공간 압축은 도시와 농촌의 분리뿐 아니라 도시 안 공간의 재구성에도 일조한다. 도시 안에서 사람과 화물의 수송을 담당하던 마차 대신에 근교전차가 도입된다. 근교전차가 건설되면서 도시는 팽창하기 시작한다. 도시의 중심에 대규모 아케이드가 만들어 지고 도로가 확장되면서 바둑판형 구조가 점차 모습을 드러낸다. 도심지에서 상업시설이 주를 이루는 반면 도시 근교에는 주거시설이 들어선다.


전차노선을 따라서만 팽창할 수 있었던 도시는 이제 자동차의 등장과 함께 이러한 제약마저 무너진다. 자동차가 주요한 수송수단으로 자리잡으면서 공공시설과 쇼핑시설은 철저히 자동차라는 수송수단에 적합한 형태로 계획되고 건설된다. 193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건설된 뉴욕의 맨하튼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현대의 사람들이 대부분의 일과시간을 도시 중심부에서 휴식은 도시근교의 베드타운에서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모두 화석에너지 덕분이다.


농업



도시와 농촌의 분리가 오직 화석에너지를 사용하는 운송수단에 의해서만 이루어 진 것은 아니다. 이는 대규모의 농업생산력 증대도 함께 요구하는 일이었다. 농촌에서의 농업생산력 증대는 18~19세기 제 2차 인클로저 운동과 산업혁명의 합작품이다. 산업혁명의 동력 중 하나였던 방직산업은 대량의 원료를 필요로 했다. 동시에 도시의 확대 급속도로 확대되면서 농산물의 수요 역시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이러한 기회를 놓칠 리 없던 지주들은 사유지 중간중간에 섞여 있던 공유지를 사유화시켜 분산되어 있던 공유지를 사유화시켜 대규모 농지로 만들 필요성을 느꼈고 이는 제 2차 인클로저 운동으로 이어진다. 거대한 단일 농지가 만들어짐과 동시에 대규모 자본 투하가 이루어 지자 생산력이 증대되기 시작했다. 생산력의 증가가 가져다 준 이윤에 자본가들은 더 큰 자본을 농업에 투자했다.


이에 더해 20세기 초부터는 흔히 우리가
녹색혁명이라고 불리는 것이 화석연료를 통해 이루어 진다. 우선 농업에서 수 천 년 동안 해결되지 못한 채 남아있던 질소부족문제를 해결하는데 화석연료가 사용된다. 질소부족에 대한 전통적인 해결방법은 동물의 분뇨로부터 만들어 지는 퇴비를 주거나 남아메리카에서 생산되는 구아노라는 원료를 이용하는 방법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두 가지 방법으로는 토양에 부족한 질소를 충분히 보충해 주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마침내 1909년 독일 화학자 하버와 보슈에 의해 공기중의 질소와 수소를 결합하여 암모니아를 생산하는 공정이 개발되었다. 이 공정에서 암모니아 구성물질 중 수소를 제공하는 것은 다름아닌 화석연료였다. , 간단한 도구와 인간의 노동력에 의해서 생산되던 것이 기계로 대체되면서 대규모의 토지에서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녹색혁명으로 농산물 생산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고 농촌은 도시 노동자들에게 충분한 농산물을 공급할 수 있게 된다.


생산력이 증대되면서 자연스럽게 농촌에는 많은 수의 실업자가 생겨났다. 인클로저 운동으로 일반 소농들은 토지를 잃고 자신의 노동력을 농업자본가에게 팔기 시작한다. 하지만 향상된 생산력으로 인해 농촌에서 구할 수 있는 일자리의 수는 줄어들었다. 모든 농민들이 농촌에서 자신의 노동력을 팔 수는 없게 된 것이다. 일자리를 잃은 이들은 대규모로 도시로 유입되었고 다행히도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공장의 노동력 수요가 이들을 흡수할 수 있었다. 도시로 이동한 이들,
산업예비군이 있었기에 자본가들은 형편없이 낮은 임금으로 이들의 노동력을 사용할 수 있었고, 이렇게 축적된 자본으로 자본주의는 더욱 번성하게 된다.


상품 생산과 소비


공장제 시스템과 시공간의 압축 덕분에 시장으로 상품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영국 면제품을 살펴보면 18세기 초에 연평균 111만 파운드에 불과했던 생산량이 19세기 초에는 4180만 파운드로 40배 이상 증가했다. 생산성 향상으로 상품의 생산량이 많아 졌다는 사실 이외에 여기서 한가지 더 눈 여겨 볼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화석연료가 기계나 수송수단의 동력으로뿐 아니라 다양한 산업의 원료로도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20세기 이후 화석연료 특히 석유에서 다양한 물질이 추출 가능해 지면서 화석연료는 기존의 전통적인 물질들을 대체해나가기 시작했다. 각종 기능성 화학섬유, 인공고무, 플라스틱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비료까지 지금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상품은 화석연료에서부터 추출된 것이다. 석유산업과 이를 둘러싼 거대 산업들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이와 같은 현상은 점점 더 가속화 되고 있다. 


폭발적으로 증가한 상품은 국내와 해외에서 소비되었다. 국내의 상황을 살펴보면 마침 화석에너지 사용으로 증대된 농업생산력 덕분에 사망률이 줄어들면서 국내인구가 상당히 증가 했는데 이들이 공장에서 만들어 낸 상품을 소비하는데 큰 기여를 한다. 국내에서 소비되지 못한 상품은 해외로도 수출되었다. 만일 예전과 같이 말과 바람에 의존한 값비싸고 불안정한 수송시스템이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화석에너지의 사용으로 인해 자본주의는 20세기 들어 인류 역사상 존재했던 어떤 체제보다도 빨리 성장할 수 있었다. 기업외부에 상품의 일정 부분의 생산을 이전하는 아웃소싱의 발달로 어디에서나 원료와 부품을 공급받을 수 있게 된 다국적 기업은 세계 곳곳에 대규모 생산기지를 만들어 상품을 생산해고 있다. 화석에너지 덕분에 가능해진 정보통신의 발달로 전세계 잉여자금은 하루 사이에 미국, 영국, 일본의 금융시장은 차례로 이동하면서 이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어두운 밤은 더 이상 인류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게 된다. 도시의 어느 곳에서나 환하게 밝혀진 불빛아래에서 쇼핑을 즐기며 자신의 욕구를 마음껏 충족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식탁 위에서 우리는 제철이 아닌 농산물을 쉽게 만날 수 있게 됐고, 점차 지구 반대편에서 생산되어 수송된 열대과일에 익숙해지기 시작한다. 누구나 돈만 있으면 유럽에서 생산된 명품을 소비할 수 있고, 비행기를 타고 아프리카로 날아가 초원 한 복판에 있는 쾌적한 호텔 방안에서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자본주의는 화석에너지를 사용하여 지구 어느 곳에서나 24시간 365일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결과적으로 자본은 화석에너지가 만들어놓은 에너지 시스템 위에서 놀라울 정도로 자신의 회전속도를 높이게 된다.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하자는 자본주의의 모토는 화석에너지 때문에 완성될 수 있었다.


결과

지금까지 살펴봤듯이 자본주의가 유지되기 위해서 화석에너지의 사용은 필수적이다. 화석에너지는 농업, 상품생산, 수송 그리고 소비생활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화석에너지에 기대어 있는 높은 생산성과 막대한 잉여를 자본주의가 포기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금전적 이윤을 차지하더라도 문제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가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이 화석연료에서 나오는 현실을 생각해보면 화석에너지에 대한 고민의 시작은 지금 우리가 소비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다른 무언가로 바뀌어지거나 적어도 다른 방법으로 생산을 해야 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생산과 소비구조를 건드리지 않은 채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이런 이유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외면하다 보니 그 결과도 좋지 않을 수 밖에 없다. 지금과 같이 화석에너지의 사용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지 않는 상황에서 대기오염과 기후변화의 주범인 화석자본주의는 너무나 큰 권력을 얻어버렸다. 누구도 이를 막지 못하고 바라만 보고 있다.


문제는 단순히 환경이 파괴된다는 것에 있지 않다. 화석연료가 가져다 주는 불행이 자본주의 안에서 만들어진 계층마다 다른 결과를 가져다 준다는 사실은 단순히 환경이 파괴된다는 사실에 가려지기 십상이다. 기후변화로 기후재해가 극심해 지면 연안에 별장을 가지고 있는 부유한 계층이 아니라 연안에서 자신의 생활을 꾸려나가는 가난한 계층에게 큰 충격이 되어 돌아온다. 이는 실제로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뉴올리언스가 침수되면서 만천하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화석연료 사용으로 이득을 보는 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언론과 정치에 대한 지배력을 이용하여 애써 축소시킨다. 더 나아가 최근에는 자신의 논리 속으로 흡수하고 새로운 이익기반을 창출하는데 까지 이른다.[4]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없는 자의 몫으로 남는다.


이들은 석유를 지키고자 전쟁까지도 불사한다. 석유와 천연가스가 풍부한 지역은 어김없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거나 독재정권이 들어서기 다반사다. 국제사회는 겉으로는 민주국가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석유와 가스가 풍부한 제 3세계의 독재는 묵인하기 일 수다. 지금은 누구나 인정하는 미국의 명분 없는 이라크 전쟁을 지지면서 파병을 연장하고 있고, 버마에서 채굴하는 가스에 눈이 어두워 버마 민중의 민주화 운동에는 눈 감아 버리는 한국의 행태 역시 비난 받아 마땅하다.


이번 태안의 기름유출은 지금의 화석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모순을 적나라게 보여준다. 사고에 대한 만반의 준비와 통제가 때로는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기 마련이다. 아무리 과학이 발전한다고 할지라도 인간의 통제력이 완벽할 수는 없다. 유조선의 기름유출 사고[5]는 인간의 통제력을 넘어서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수 밖에 없으며 우리는 그것에 대한 대비가 아니라 우리가 사용하는 화석에너지 자체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태안 기름유출사고와 관련된 사고 당사자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기에 앞서 우리 자신의 생산과 소비 양식을 다시 한번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필요가 있다.



[1] 지금의 계산방법으로 산업혁명 시기의 경제성장률을 조사한 결과 연 0.5~2%에 불과했으니, 산업혁명 전 시기의 경제성장률은 미루어 짐작 할 수 있을 것이다.

[2] 일자리를 잃은 소규모 공방의 장인들이 기계를 부수기 시작한 러다이트 운동은 새로운 노동 관계가 그들에게 그리고 사회에게 크나큰 충격이었음을 대변해 준다.

[3]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가장 먼저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풍부한 석탄이었음을 생각하면 여전히 물리적 제약이 존재하고 있었지만, 수송능력의 증가로 인해 석탄이 생산되던 국소적 지역에서만 사용되던 한계에서는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4] 기후변화관련 상품과 펀드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5] 같은 맥락에서 핵폐기물을 핵 폐기장까지 이동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사고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작성    최현도

2008/02/25 17:15 2008/02/25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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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aviar sex 2008/05/23 05: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용한 정보. 좋은 디자인.

  2. fetish claudia 2008/05/23 07: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걸출한 위치! 많은 감사.

  3. naked camp 2008/05/23 07: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합의한다 너에 이다. 그것은 이렇게 이다.

  4. la petite sirene 2008/05/24 02: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같지 않는 블로그!

  5. big boner in my face 2008/05/24 03: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중대하고 유용한 위치!